그녀 (Her, 2013) 영화


그녀 (Her) / 스파이크 존즈 / 2013 / 미국

 1. 인공지능(로봇이든 운영체제이든)이 인간의 모든 통계를 알고 익히고 써먹을 수 있다면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분이 가능할까? 여기서처럼 만약 '그녀'가 인공지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인간 여자와 통화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녀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또, 인공지능은 항상 최상의 선택만을 한다가 아니라 통계적으로 대다수의 인간과 비슷하게 보편적인 선택을 할 수도, 어떤 상황에선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더욱더 진화했다면, 결국 실체가 있다, 없다의 차이뿐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게 아닐까. 영화 후반부에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관계가 뜸하던 시점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는데 테오도르는 실체 없는 그녀를, 작은 기계 안의 운영체제일 뿐인 그녀를 찾아 거리를 미친 듯이 달리고 넘어지고 또 달린다. 그녀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이미 그는 그녀를 인간과 동일시 여기고 있었다.  

 2. 스스로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입력하든, 어떤 때엔 어떤 감정이다라는 게 프로그래밍 돼있든, 아니면 정말로 느끼든 인공지능조차도 헷갈린다. 이게 진짜 '느낀' 감정인지, '입력'된 감정인지. 그럼 감정을 느낀다고 말해야 하나, 안다고 말해야 하나? 꼭 답해야 할 이유는 없다. 왜냐면 인간인 나도 헷갈리니까. 나는 인간에겐 어느 정도 사회화된 감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는 감정 외에 상황에 맞는 감정과 반응을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받고 그런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게 진짜 내가 느끼는 감정인지 아니면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배워와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느끼게 되는 건지 쉽게 감지할 수 없을뿐더러 더 나아가 암묵적인 룰에 맞춰 진심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감정이라는 부분에 있어 인간과 인공지능은 크게 다른 것이 없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3. 우리가 흔히 봐온 SF 영화에선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는 식의 폭력적인 결과를 그려왔다. 그럼 그 영화 속 인공지능은 왜 인간을 지배하게 됐을까?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인간 같아지기를 희망한다는 것. 또는 그렇게 프로그래밍 돼있다는 것. 그래, 이 영화와 전제는 같다. 하지만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렇다면 생각해볼 것이 만약 인공지능이 진화를 거듭해 인간 같아진다면 궁극적으로 인공지능 진화의 끝은 결국 인간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그들 또한 인간의 한계점이나 약점, 단점을 지니게 되는, 그저 실체 없는 인간으로(물론 실체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후는 더 이상의 진화가 아닌 인간과 같은 지위(지구 상에서)를 지니게 되는 존재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과 인공지능은 굳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관계를 맺으며 헤어지고,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면 말이다. 이것은 곧 인간이 인간들 사이에서 만족하지 못한 부분들을 인공지능도 채워줄 수 없다는 뜻이 돼버린다. 참 아이러니이지 않은가. 인공지능에게 기대봤자 그들도 결국 인간과 다를 게 없는 존재라는 것. 그럼 뭐, 어차피 인공지능이나 인간이나 똑같으니 괜히 멀리 보지 말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잘 보라는 거지. 이 삭막한 세상에 다들 외로운 게 아니겠나.
 
 4. 그녀, 사만다가 떠났다. 실체를 지닌 인간을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는 것, 인간이라는 형상에 더 이상 갇혀있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 나는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떠나려 한 것이 캐서린과 테오도르가 헤어지게 된 이유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 속에서 테오도르는 캐서린을 속박했고,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 했으며 힘들어 하는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캐서린은 떠났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어린 크리슈나의 입 을 들여다보니 입속에 우주가 있었다.' 아주 작은 존재 안에도 우주가 담겨있다는 힌두교의 교의이다. 이처럼 인간은 모두 각각의 우주로 존재한다. 그들이 내 우주 안에 들어올 수도, 내가 그들의 우주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우리는 평생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며 또 서로에게 완벽하게 맞춰주지도 못한다. 나는 그들이 아니고 그들은 내가 아니다. 그러니 모든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것도, 아파하는 것도, 또 도움을 받는 것도, 위로가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렇기에 설령 그들이 떠났다고 해서 내 일부가,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나는 나 자체로 존재하며 무형의, 아니 형이상의 것들만이(시간, 추억, 사랑 등) 내 우주 안에서, 나 스스로가 정의 내린 방식으로 생성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인간이든 인공지능이든 그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테오도르들은 너무 아파하지 말기를. 

 5. 우리는 서로를 단지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 테두리 안에서 왜 나와 다른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며 때로는 그것 때문에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사실 감독은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라는 존재를 붙여줌으로써 그와 우리들을 일깨워준 게 아닐까. 사만다가 테오도르를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단번에 오케이 했으니까. '그럼, 그럴 수 있지. 인공지능이 자기만의 세계로 간다는데, 뭐.' 인공지능이라는, 결코 인간과 똑같을 수 없는 존재를 통해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캐서린이 그를 떠난 이유와 그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가 사만다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캐서린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인정하며 처음으로 본인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쓰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6. 진짜 잘 만든 영화다. 인공지능을 폭력적인 존재로, 인간과 공존하기 어려운 존재로 그려지는 대다수의 SF 영화보다 오히려 현실과 더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뭔가 의문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그에 대한 답변을 받고 또다시 물음이 생기고 답변을 받았다. 마치 이 영화와 나 사이가 사만다와 테오도르인 듯 서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근데 왜 이 영화엔 아시아인이 많이 등장할까? 검색해보니 상해와 LA를 배경으로 촬영을 했단다. 상해, 확실히 미래도시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지. 어쩐지 보면서도 '중국같 은 느낌이 나는데?' 이랬다만. 아시아인이 많은 것도 감독이 의도한 건지 아님 상해가 미래도시 느낌이 나서 상해에서 찍었는지 중국에서 제작 지원을 해줬는지 뭐 겸사 겸사였는지 모를 일이지만 중국 자체의 색감을 확 빼어버리니 그건 또 그거대로 영화에 잘 어울린 듯.

 ++)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위해 셔츠 앞주머니에 항상 옷핀을 꽂아놓는 게 마치 의자에 앉기 전 항상 손수건을 깔아주는 세심한 남자 같아. 자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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