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 / 조나단 드미 / 1991 / 미국
내가 매주 본방사수를 외치는 비정상회담에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가 나왔다. 범죄, 가해자, 피해자, 범죄심리학 등에 대한 토론과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갑자기 이런 장르의 영화가 당겼다. 요즘 미국 영화만 본 것 같아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려고 했었는데 뭐 우선은 보고 싶은 게 먼저다. 워낙 영화가 유명해 안소니 홉킨스가 사이코패스인 닥터 한니발 렉터 역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과연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 등장하고 어떤 연기를 펼쳤기에 그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또 그런 그의 분량이 15분밖에 되지 않았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고.
여자에 어리고 예쁜 학생 클라리스(조디 포스터)가 닥터 한니발 렉터를 만나러 걸어간다. 어디서 봤던가. 교도소에서 더 깊이, 더 오래 들어갈수록 위험한 인물이라는 뜻이라고. 그렇게 수많은 문과 수많은 철창과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 그를 만나러 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아직은 긴장과 두려움이 보인다. 그렇게 그녀와 우리가 처음 마주하게 된 한니발 렉터는 그 시대에 우리가 상상하던 범죄자의 모습이 아니다. 물론 현재에 와서는 우리가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만 영화가 나온 91년만 해도 아마 생소한 모습이었을거다.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 섬세한 말투, 화장품과 옷의 브랜드를 잘 알고 사람을 대할 때도 굉장히 젠틀하고 깔끔하다. 그런 모습이 마치 그가 감옥이 아닌 자신의 방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사실 초반엔 그런 그를 보며 그동안 영화에서 특정해온 게이인 듯 보이기도 했다.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가볍게 제치고 안소니 홉킨스는 조디 포스터와 대화하는 내내 우리를 아주 강렬하게 바라본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클로즈업 샷과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상태로 카메라 너머의 사람들을 정면으로 똑바르게 쳐다보며 연기를 하는 그를, 사이코패스인 닥터 한니발 렉터를 보고 있으니 내가 그에게 최면이 걸린 듯 빠져들어 갔다. 그래서 그런가. 분명히 미친 살인마인데 그가 나쁘게 생각되지가 않았다. 오히려 희생된 피해자 수만 따지면 버팔로 빌보다 더 악질인데 그가 교도관을 잔인하게 죽일 때에도, 찰튼 박사를 따라갈 때도 오히려 그의 편에서 감정적으로 동조하게 됐고 그건 나뿐이 아니라 영화 속 클라리스도 똑같았다.

그 해 가장 섹시한 씬으로 뽑혔다는 한니발 렉터와 클라리스의 손터치는 나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는 범죄자와 프로파일러가 아닌 남녀 사이의 긴장감이 묘하게 흘렀기에 그 씬을 보자마자 벌써부터 그 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원작 책을 빌려 봐야겠다(아쉽지만 책은 절판되었다). 여하튼 그런 묘한 관계 속에 서로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되며 성적 긴장감이 한층 더 짙어지게 된다.
미드 '크리미널 마인드'를 즐겨본 터라 프로파일링, 범죄심리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이 오래된 영화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드라마에서의 수사기법, 범인 특정 등에서 놀랄 정도로 흡사한 걸 보고는 정말 고증을 철저히 했구나 싶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선 범죄자에게 배운다. 아주 단순하지만 명확한 사실인 반면 인간을 말한다는 점에서 아주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 느낌을 영화 전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기에 감독과 배우들, 그 외 모든 제작진과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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